레이 달리오 “지난 500년간의 빅 사이클” 2편

레이 달리오
“The Big Cycles Over The Last 500 Years”
2편

레이 달리오 의 “The Big Cycles Over The Last 500 Years” 2편 입니다. 지난 1편에서는 제국의 빅 사이클과 제국의 흥망성쇠의 역사를 돌아보았다면 이번 2편 포스팅에서는 이 후 1,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제국과 달러의 부상에 대해 다루어보겠습니다. 출처는 레이 달리오 의 링크드인 게시물 입니다.

1편 : 서론, 제국의 빅 사이클, 제국의 흥망성쇠(1)
2편 : 제국의 흥망성쇠(2), 1,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제국과 달러의 부상

출처 : Chapter 4: The Big Cycles of the Dutch and British Empires and Their Currencies

1. 제국의 흥망성쇠(2) – 대영 제국과 영국 파운드의 흥망성쇠

① 평화와 번영의 시기

이러한 사이클에서 항상 나타나듯이(As is classic), 전쟁이 끝난 이후, 승전국들(영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등)은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해 만났다.

이 모임이 빈회의(the Congress of Vienna)였다.  승전국들은 부채, 통화, 지정학적 시스템을 재설계했고 파리조약에서 명시된 대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냈다.

이때부터 대영 제국은 100년간 어떤 국가도 넘볼 수 없는 가장 주도적인 제국의 위치를 차지하며 ‘imperial century’의 단계를 밟게 된다. 이와 더불어, 영국의 파운드도 세계의 기축통화로 인정받았다.

이러한 사이클에서 항상 나타나듯이(As is classic), 전쟁 이후에 평화와 번영의 시기가 나타났다. 왜냐하면 지배적인 패권국가인 영국에 어떤 국가들도 도전하지 않았으며, 잘 작동되고 있는 새로운 질서를 전복하려고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100년의 번영 동안에도 공황이라고 불리우는 몇 번의 안 좋은 경제적 상황(예를 들어, 영국의 1825년 공황, 미국의 1837년, 1873년 공황)과 군사적 충돌(예를 들어,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의 크림 전쟁)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들은 영국이 만들어 놓은 번영하고 평화로운 시기를 바꿀만한 큰 영향력이 없었다(영국의 패권을 뒤집을 만한 큰 사건들이 아니었다).

네덜란드가 그랬던 것처럼 영국도 자본주의 시스템을 도입했다. 영국은 상업적인 활동과 군사적인 힘을 결합하여 전세계에 영향을 끼쳤고 엄청난 부를 모으게 되었으며 더 강력해졌다.

예를 들어, 영국 동인도 회사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대체했고, 세계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우세한 회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 회사의 군사력은 영국 정부 상비군의 약 2배가 되었다. 이러한 접근은 영국 동인도 회사를 매우 강력하게 만들었고 영국 국민들 또한 부유하고 강력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1760년 경에 영국은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급격하게 끌어올리는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이를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이라고 부른다.

이때 증기 기관을 통해 기계 생산이 가능해졌다. 영국은 상대적으로 작은 국가(영토)였지만 잘 교육된 국민들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를 만들었다.

이들은 새로운 발명, 자본주의, 뛰어난 조선기술, 다른 기술들을 결합해 세계로 나아갔다. 이와 더불어 강력한 군사력은 대영 제국을 향후 100년 간의 패권국가로 발돋움하게 만들었다.

1870년~1900년대 초반에 2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평화롭고 번영한 시기는 지속되었다. 이 시기동안 인간의 독창성은 엄청난 기술적 진보를 만들어냈고 이를 소유한 인간들은 부자가 되었다.

② 빈부격차 심화와 부채 버블

이러한 사이클에서 항상 나타나듯이(As is classic), 다른 국가들은 영국의 기술을 모방했고, 그들 또한 번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는 엄청난 빈부격차 또한 만들어냈다.

예를 들어, 이 기간 동안 강철 생산기술의 발명, 자동차의 발명, 전기의 발명,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전화와 토마슨 에디슨의 백열 전구 및 축음기의 발명이 있었다. 이때 미국이 강력하게 성장하여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가 되었다. 이러한 국가들은 매우 부유해졌고 국가간 부의 격차가 증가했다.

이 시기를 미국은 “대호황 시대 또는 황금시대(the Gilded Age)”, 프랑스는  “좋은 시대(la Belle Époque)”, 영국은 “빅토리아 시대(the Victorian Era)”라고 불렀다.

이러한 사이클에서 패권국가에게 항상 나타나듯이(As is typical at such times the leading power), 영국은 상대적으로 힘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과도하게 빚을 늘리기 시작했다.

다른 국가들은 점점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영국은 제국을 유지하는데 비용소모적이고 수익성이 떨어지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유럽국가들과 미국이 제 1장에서 제시했던 고전적인 방법으로 경제적, 군사적으로 더 강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제국의 상대적 위치를 보여주는 위의 그래프를 살펴보면, 영국이 더 강력 군사력, 무역, 그리고 기축통화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1890년 경에 미국이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영국과 비교가능할 정도로 강대국이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은 계속해서 힘을 키우고 있었다.

③ 국가들의 충돌과 제 1차 세계 대전

1900년부터 1914년까지, 부의 격차가 커지면서 1) 국가들 사이에 부를 어떻게 분배해야 할지에 대한 논쟁이 점점 많아졌고, 2) 유럽국가들의 군사적, 경제적 힘이 서로 비교가능할 정도로 비슷해져서 갈등들이 점점 늘어났다.

이러한 사이클에서 항상 나타나듯이(As is typical at such times), 국제 분쟁은 연합(alliances)을 형성했고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전쟁 전에 돈과 권력이 고려되면서 갈등과 동맹이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적들에게 돈과 신용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는 전형적인 방법들이 었다. 독일은 러시아가 베를린에서 채권을 팔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래서 러시아는 채권을 프랑스에서 팔았다. 결국, 이러한 조치는 러시아와 프랑스의 동맹이 강화되는 동인을 제공했다.

러시아의 빈부격차는 1917년 혁명으로 이어졌다. 이는 이 책의 파트 2에서 다루는 부와 권력을 놓고 싸우는 가장 극적인 이야기 중 하나이다.

영국과 네덜란드가 경제적 동인으로 선박 충돌이 있었던 것과 비슷하게, 독일은 전쟁 초기에 영국으로 가고 있던 5척의 상선을 침몰시켰다.

이 사건은 미국이 전쟁을 참전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복잡한 상황들이 맞물려 제 1차 세계 대전(World War 1)이 발생했다.

이 전쟁은 전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참여했다. 세계가 점점 글로벌화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전쟁에서 약 850만 명의 군인들과 1300만 명의 시민들이 사망했다.

이 전쟁이 끝나자마자, 스페인 독감이 출몰했다. 2년 동안 2000~5000천만 명의 사람들이 사망했다. 1914~1920년은 너무 끔찍한 시기였다.

2. 제 1차 세계대전 이후에 미국 제국과 미국 달러의 부상

① 신세계 질서(New World Order)

전쟁 후에 항상 나타나듯이(As is typical after wars), 승전국들(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은 세상의 새로운 질서를 정립했다.

파리평화회의는 1919년 초에 개최되었고 6개월 간 지속되었으며 베르사유 조약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조약으로 인해 패전국들의 영토(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 제국, 불가리아)가 분할되어 승리한 제국들의 통치하에 놓이게 되었다.

패전국들은 금으로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치뤄야 했으며 감당할 수 없는 막대한 부채를 안게 되었다.

이때 미국은 가장 주도적인 힘을 가진 국가로 인정받게 되었고, 새로운 세계 질서를 만드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사실, “신세계 질서(new world order)”라는 용어는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우드로 윌슨의 비전으로 만들어졌다. 미국은 국가들이 집합적인 이익을 추구할 수 있도록 글로벌 거버넌스 시스템이 작동하기를 바랬다.

제 1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은 고립주의를 선택한 반면, 영국은 세계 식민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확장을 지속했다. 전쟁 후에, 화폐 제도는 유동적이었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금의 태환성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금에 대한 통화의 안정성은 급격한 가치 하락과 인플레이션 이후에 나타났다.

② 평화의 번영의 시기, 독일의 부상

패전국인 독일에 엄청난 외채 부담을 부과하면서 다음과 같은 단계가 나타났다.

1) 전쟁후에 독일은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경기침체에 빠지게 되었다(1920~1923).

그러나 독일의 부채가 사라졌기(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부채가 녹았습니다) 때문에 독일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회복될 수 있었다.

2) 10년 동안의 평화와 번영이 전세계에서 나타났고, 사람들은 이 시기를 “Roaring 20s”라고 불렀다.

이 기간 동안 미국은 고전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을 도입하여 자원을 효율적으로 할당했다. 뉴욕은 영국과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금융의 중심지가 되었다.

다른 국가들도 점점 경쟁력을 갖추고 번영하게 되면서 강대국들에게 도전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독일, 일본, 미국이 챕터 1에서 제시한 고전적인 방법을 통해 군사적 및 경제적으로 강력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고립주의를 선택했기 때문에 국경을 넘는 거대한 식민 제국을 보유하지 않았다(과거에 네덜란드와 영국은 뛰어난 조선기술을 통해 광활한 식민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제국의 상대적 지위에 관한 그래프를 보면, 이 시기에 영국이 가장 강력하긴 했지만, 독일과 일본이 영국과 비교가능할 정도로 성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③ 부의 격차 심화와 부채 버블 붕괴

이러한 사이클에서 항상 나타나듯이(As is typical), 1920년대에 부채가 증가하였고 부의 격차가 심화되었다. 결국 1929년에 부채 버블이 터지게 되었다. 이는 대공황을 만들어냈다. 

돈을 엄청나게 찍게 되었고 화폐가치가 하락했다. 1930년 대에 부와 힘에 대한 내부적 및 외부적 갈등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미국과 영국에서는 정치적 권력과 부의 재분배가 나타났지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유지되었다.

반면, 독일, 일본, 이탈리아, 그리고 스페인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유지되지 못했다. 당시 중국은 약했고 분열되어 있었다. 중국은 군국주의와 국수주의를 채택하여 떠오르고 있었던 일본에 의해 통제 받고 있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일본과 독일은 193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영토확장을 시작했고, 이는 1930년대 말부터 1945년까지 유럽과 아시아에서 전쟁이 발발하는 원인이 되었다.

④ 제 2차 세계 대전

이러한 사이클에서 항상 나타나듯이(As is typical), 전쟁이 선포되기 전에 약 10년간 경제적, 기술적, 지정학적, 자본적 전쟁이 있었다.

이때 강대국들이 서로 충돌하고, 경쟁하고, 도발했다. 1939년과 1941년은 유럽과 태평양 전쟁의 공시적인 시작으로 알려져있지만, 이 전쟁은 실제로 10년 전에 이미 시작되었다.

처음에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던 경제적 갈등이 점차 확산되면서 제 2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다. 독일과 일본이 점점 군사적, 경제적으로 강력해지면서 영토에 대한 영향력과 자원을 두고 영국, 미국, 프랑스와 경쟁하게 되었다.

결국, 제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국가들은 새로운 기술들(핵폭탄, 새롭게 발명된 각종 무기)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전쟁에서 군사적 충돌로 2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다. 총 사망자 수는 이보다 더 많았다. 1930~1945년은 전쟁과 경기침체의 시기있다. 매우 끔찍한 시기였다.

3.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미국 제국과 미국 달러의 부상

① 새로운 세계 질서(New World Order)

전쟁 후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듯이, 승전국들은(미국, 영국, 러시아) 새로운 질서를 만들게 된다. 브레튼 우즈 회의, 얄타 회담, 포츠담 회담이 가장 주목할만했다.

그러나 몇몇 다른 회의 및 회담에서 세계를 분활하고, 국가와 영향력의 영역을 재정의하고, 새로운 화폐 및 신용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포함한 새로운 세계 질서를 수립했다.

세계는 미국이 통제하는 자본주의/민주주의 국가들과 러시아가 통제하는 공산주의/독재주의 국가들로 나뉘었다. 각각의 국가들은 자신만의 화폐 제도를 보유하고 있었다.

독일은 미국, 영국, 프랑스가 통제하는 서독과 러시아가 통제하는 동독으로 분열되었다. 일본은 미국의 통제하에 있었다. 중국에서는 내전이 발했다. 주로 공산당(마오쩌둥)과 국민당(장제스) 사이에서 부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 핵심이었다.

제 1차 세계 대전 이후의 미국은 고립주의를 선택했지만,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미국은 경제적, 지정학적, 군사적인 책임의 대부분을 지는 세계의 주요한 지도자 역할을 수행했다.

미국은 자본주의 체제를 따랐다. 미국과 미국을 따르는 국가들의 새로운 화폐 제도는 달러와 금을 연동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국가들의 화폐는 달러와 연동되었다. 이 새로운 화폐 제도를 40개 이상의 국가들이 도입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미국의 전세계 금의 약 3분의 2를 보유하고 있었고, 다른 나라들보다 경제적, 군사적으로 훨씬 강력했기 때문이다. 이 화폐 제도는 잘 작동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던 일부 국가들의 경우(러시아 및 소련 통제하의 위성 국가들), 약한 기반으로 인해 결국 붕괴되었다.

패전국들이 큰 빚을 떠앉은 제 1차 세계 대전과 달리, 패전국을 포함해 미국의 통제하에 있었던 국가들은 마셜 플랜(Marshall Plan)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금융 지원과 원조를 받았다.

이 시기에 패전국들의 통화와 부채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는 이 국가들의 부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영국은  전쟁자금 차입으로 인해 막대한 부채에 시달렸고, 경제적이지 못하게 되어 제국의 해체로 이어졌다. 결국, 식민지 시대의 점진적인 종말에 직면하게 되었다.

② 평화와 번영, 그리고 생산적인 부채의 증가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 미국의 동맹국, 그리고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던 국가들은 고전적인 자본주의-민주주의 접근법을 따랐다.

뉴욕은 세계 금융 중심지로 번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부채와 자본시장의 새로운 사이클이 시작되었다. 이는 비교적 평화롭고 번영한 75년의 기간을 만들어냈고 지금의 우리를 이끌었다.

평화와 번영의 사이클에서 항상 나타나듯이(As is typical of this peaceful and prosperous part of the cycle), 1950~1970년 시기에 생산적인 부채의 증가가 있었다.

그리고 주식시장이 발전하게 되면서 금융의 혁신과 발전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이는 결국 전쟁과 국내 수요로 촉진되는 과도한 부채로 이어졌다. 이를 ‘대포와 버터(guns and butter)’라고 부른다.

미국에서 베트남 전쟁과 “가난과의 전쟁”이 나타났다. 다른 국가들 또한 과도한 부채를 지게 되었다. 특히, 영국의 부채는 과도하게 차입되었고 이는 화폐 가치의 화락을 초래했으며 브레튼 우즈 통화 시스템의 붕괴를 초래했다.

1971년, 미국이 다른 나라들의 금태환 요구를 모두 충족시켜 줄 만한 금을 충분하게 보유하지 못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결국, 미국은 금태환 중지를 선언하게 되었고 이는 새로운 화폐 시스템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Type 2 gold-backed monetary system, fiat monetary system).

③ 부채 버블과 버블 붕괴 그리고 빈부격차

이러한 사이클에서 항상 나타나듯이(As is typical), 이러한 새로운 화폐 제도로 인해 엄청난 달러와 부채 창출로 이어졌다.

1980년~1982년까지 인플레이션을 발생시켰고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로 이어졌다. 또한, 이 화폐제도는 부채로 촉진되는 투기와 거품, 거품의 붕괴라는 사이클을 가진 3 가지의 사건을 만들어냈다.

1) 2000년에 닷컴 버블에 의해 만들어진 신용과 돈의 팽창으로 인해 2000~2001년에 경기침체가 나타났다.

2) 2002~2007년에 부동산 버블로 촉진된 신용과 돈의 팽창으로 2008년 대침체가 나타났다.

3) 2009-2019년에 투자버블로 촉진된 신용과 돈의 팽창이 있었고, 코로나 19가 발발하여 침체를 겪고 있다.

이러한 사이클을 거치면서 부채와 부채가 아닌 의무들(예를 들어, 연금과 건강보험)이 점점 늘어나 너무 높은 수준이 되었다.

이는 제 2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들의 중앙은행들이 전례없이 금리를 낮추고 화폐를 찍어내는 배경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항상 그랬듯이, 이러한 국가들에서 부와 정치적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고, 경제 침체 동안에 내부적인 갈등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이다.

④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부상

전쟁 후 번영의 시기 동안, 많은 국가들이 강대국과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비교가능할 정도로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러시아는 처음에 공산주의식 자원 배분 접근 방법을 채택했다. 이 방식을 채택했던 국가들은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소비에트 연방은 핵무기를 개발해 군사적으로 위협적이었다. 다른 나라들도 점차 핵무기를 개발하게 되었다. 이 무기들을 사용하면 상호간의 파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이 무기들이 사용된 적은 없었다.

소비에트 연방은 경제적인 실패를  겪었기 때문에 a) 제국, b) 경제, c)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이었던 미국과의 군비경쟁을 유지할 여력이 없었다.

1991년에 결국 소비에트 연방은 붕괴 되었고 공산주의를 포기했다. 소련의 돈/신용/경제시스템의 붕괴는 1990년대의 경제적, 지정학적 재앙이었다.

1980-1995 기간 동안 대부분의 공산주의 국가들은 고전적인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세계화와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채택해 번영한 시기를 맞이했다.

중국의 경우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1976년에 덩 샤오핑이 새로운 주석으로 집권했다. 덩 샤오핑은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한 경제 정책으로 전환했다(흑묘백묘론).

이로 인해, 대기업의 사적 소유권의 인정, 부채와 주식시장의 발전, 기술적 및 상업적 혁신, 억만 장자 자본가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공산당의 엄격한 통제하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변화들 덕분에 중국은 여러 분야들에서 점점 강력해졌다.

예를 들어, 내가 1984년에 중국을 처음 방문한 이래로, 중국의 교육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고, 1인당 실질소득이 24배 증가했다.

그리고 세계 무역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었다(세계 무역 점유율에서 미국을 압도한다). 미국과 경쟁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 강국이 되었다. 가장 많은 외화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고 미국의 지정학적 경쟁자가 되었다. 그리고 현재 미국과 다른 선진국보다 더 빠른 속도로 힘이 성장하고 있다.

동시에 진보된 정보/데이터 관리와 인간 지능을 대체하는 인공지능 덕분에 나타난 위대한 창의력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이 선도하고 있다. 챕터 1의 시작에서도 밝혔듯이, 인간의 융통성과 창의력은 진보를 만들어내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가장 강한 힘이 될 것이다. 또한, 지금의 세상은 부가 넘치고 숙련된 기술이 있다.

즉, 사람들이 전체 파이를 더 크게 만들고 잘 분할할 수 있도록 함께 협력한다면 그 어느 때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 이 역량은 우리를 현재 우리가 있는 곳으로 이끌 것이다.

 


 

레이 달리오 “The Big Cycles Over The Last 500 Years” 1,2편으로 나누어 번역 및 정리 하였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과거를 통한 배움과 적용이 중요하지만 금융, 투자에 있어서도 역사를 알고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투자에 레이 달리오 의 분석글이 유용하게 작용하길 기대합니다.

 

시나리오로 완성하는 각본있는 투자

Written by

Logan (최성원)
두물머리 Quantamental Research 팀 | 필진 글 더보기 >

거시(매크로) 경제 분석을 주로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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